저자 박영민
그럼 소는 누가 키워?
알파맘의 비밀노트 구독자 여러분 중에 이 개그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까요? ‘두분 토론’이라는 개그 코너에서 남자 토론자 역할의 개그맨이 위기의 순간이 오면 크게 소리치면서 위기를 모면했던 유행어입니다. 여기서 ‘소를 키우는 사람’이란 메타포적 의미를 가지는데 실질적인 의미로는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생산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에게 학교 교육은 언제든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실질적인 생산활동을 하는 생산형 인재를 키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남의 작은 읍에 위치한 소규모 초등학교의 교사입니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지도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파릇파릇했던 20대 중반에 멋진 청년으로 교직을 시작해서 어느새 매일 매일 늘어나는 흰머리에 고민이 커지는(다행스럽게도 머리카락은 아직 짱짱해요ㅋ) 40대 중반의 아저씨 선생님이 되었죠.
초임시절 신규로 발령받은 학교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키는 180대 중반에 헤비급 체격을 가진 저에게 첫 만남에서 강한 인상을 받으신 교장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네는 신이 선택한 초등학교 남교사의 외모를 타고났네!” 저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학년을 배정받고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 정도 생기면 아이들이 함부로 반항할 수 없을거라며 그 학교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학년을 저에게 담임으로 주셨죠. 지면에서는 다룰 수 없는 정말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님 말씀이라면 법처럼 잘 따르며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해 주었던 제자들에게 너무 감사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생활을 돌아보면 학생들이 학교를 오는 이유도 많이 변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잘 관찰해보면 학교에 오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맛있는 급식 때문입니다. 물론 선생님의 입장에서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청결한 조리 환경과 균형 잡힌 영양분 그리고 조화로운 음식 맛에 다음 주 급식표를 달달 외우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기 위해 학교에 옵니다.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무엇보다 큰 학생들에게 학교는 친구들과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인 것이죠. 그래서 저에겐 수업이란 친구들과 함께 안전한 공간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이 학교를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그 안전한 공간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며 놀이 속에서 의미있는 배움과 관계를 구축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자기 효능감을 키우고 그걸 바탕으로 자신있게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나름 유명한 수업 코칭 강사로 활동하다보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업들을 참관하고 컨설팅 하는 경험들을 자주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아픈 경험들을 하게 되는데 특히, 고등학교 수업 현장의 모습을 지켜보면 여전히 정규분포의 역설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수의 특화 프로그램이나 수업들이 기존 교육과정에서 우수한 인재로 평가받는 학생들을 위해서만 운영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이렇게 잘 교육받은 우수한 인재들은 수도권에 있는 대학의 특정과에 진학하고 수도권에서 삶을 살아가게 되죠. 결국 또 다시 수도권에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정안전부의 인구감소지역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 경기지역과 5대 광역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들이 인구감소를 넘어 인구 소멸의 위기에 처해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제로 우리 지역을 발전시키고 유지해나가는 지역 인재들은 정규분포의 상단에 있는 친구들이 아니라 중간 또는 하단에 있는 학생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 여건에 맞는 특화된 교육 활동을 통해 그 학생들이 지역사회에 적응하고 지역을 발전, 유지시킬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여전히 학교의 교육과정이 정규분포의 역설에 빠져 있다는 것은 서글픈 현실입니다. 이런 사회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무수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결국 문해력이 답
최근의 설문조사를 보면 초등학생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 전체 1위는 부동의 수학이었지만 고학년에서는 의외의 과목인 사회가 1위를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암기할 내용이 가장 많은 사회가 고학년 아이들에게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죠. 저학년에서는 수학이 50%, 영어가 48%로 높게 나타났으며, 고학년에서는 사회가 49%, 수학이 47%로 높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회과에는 교과서에 빼곡하게 글이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죠. 즉, 아이들이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글의 양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뜻이죠. 아이들이 성장하며 만나는 모든 학습 과정에는 문해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초등학교에서는 기본적인 독해력을 바탕으로 교과 내용을 이해하고, 중학교에서는 더 복잡한 개념과 추상적인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문해력이 필요합니다. 고등학교에 이르면 방대한 양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문해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정보를 접하고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짧은 영상에 치우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조금만 글이 길어지고 복잡해지면 아예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특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문해력의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새롭게 개정된 교육과정에서도 디지털 소양을 학생들의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디지털 환경에서 어떤 정보가 가치 있고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능력은 필수적입니다. 또한 수학, 과학 등의 영역에서도 문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하는 수리적 문해력이 학업 성취의 열쇠가 됩니다.
주목할 점은 문해력이 단순한 학업 능력을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뉴스를 보며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중요한 계약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문해력은 필수적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 역시 확장된 의미의 문해력에 포함됩니다.
교육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학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의 문해력 발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단순한 지식 암기보다 이해와 적용에 중점을 둔 학습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성장 단계에 맞는 문해력 향상 전략은 학업 성취 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에서 요구되는 핵심 역량을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제 문해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그리고 더 풍요로운 지적 생활을 누리기 위해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바로 문해력입니다. 결국, 모든 학습과 성장의 열쇠는 문해력에 있습니다.
심심한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수많은 기사와 댓글로 한때 인기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심심한 사과’ 논란은 말을 전달하는 사람의 ‘심심’과 말을 전달받는 사람의 ‘심심’이 일치하지 않아 생긴 문해력의 대표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문해력은 무엇일까요?
흔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단순화하지만, 실제 문해력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문해력은 텍스트를 단순히 해독하는 것을 넘어,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분석하며,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나아가 이를 자신의 지식과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종합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문해력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초적 문해력으로 글자를 읽고 문장의 기본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둘째, 기능적 문해력으로 텍스트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핵심 정보를 추출하는 능력입니다.
셋째, 비판적 문해력으로 텍스트의 신뢰성을 평가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며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는 능력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문해력이 갖는 의미는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선별하고, 가짜 뉴스를 분별하며, 복잡한 문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차원적인 문해력이 필수적입니다. 학업적 성취를 넘어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문해력은 기본 토대가 됩니다.
학년별로 문해력의 발달 양상과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이 다릅니다. 초등 저학년에서는 기초 문해력 습득에 중점을 두어 글자와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초등 고학년에서는 교과서나 다양한 자료에서 중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정리하는 기능적 문해력이 중요해집니다.
중학생이 되면 여러 교과에서 요구되는 전문적인 용어와 개념을 이해하고, 교과 간 지식을 연결하는 통합적 문해력이 요구됩니다. 고등학생에게는 복잡한 학술 텍스트를 분석하고, 저자의 관점과 자신의 관점을 구분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고차원적 문해력이 핵심입니다.
문해력은 단순한 학습 도구가 아니라 평생 사용할 사고의 근간입니다. 좋은 문해력을 갖춘 학생은 새로운 지식을 더 빠르게 습득하고, 복잡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문해력이 부족하면 교과 내용 이해에 어려움을 겪고, 학습 동기가 저하되며, 학업 성취도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문해력은 모든 학습의 기초이자 미래 사회에서 요구되는 핵심 역량입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발전하는 시대에도 복잡한 정보를 이해하고 평가하며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은 인간 고유의 가치로 남을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의 문해력 향상을 위한 체계적인 접근과 꾸준한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2편에서 계속됩니다.